이젠 104세가 된 철학자 “촛불은 혁명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 문서들을 보면 일부 정치인들의 ‘정한론을 제외하고는 19세기 말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 속에 한국의 식민지화라는 단어를 찾기 쉽지 않다.
당시 호남은 전국 평균보다 9.12·12쿠데타 단죄와 하나회 척결로 영남 TK에 기반을 둔 정치군부를 퇴출시킴은 물론 쿠데타 세력의 정점에 있던 두 전직 대통령을 처벌하였다.
지역 대 지역 구도 문제에서 시대 과제 돌파와 국민통합의 계기를 마련한 철학과 정책은 오늘의 진영 대결에 대한 바른 해법을 위해서도 긴요하다.정치군부의 전격적인 제거와 쿠데타 세력 처벌을 통한 나라의 문민화.전직 대통령 부패처벌을 포함하여 청렴정치를 추구하였다.
한 사람은 임기 중 자식을 구속한 첫 대통령이었고.자기 읍참을 통한 청렴과 부패청산 노력 역시 동일하였다.
문민정부 30주년의 의미는 거기에 있다.
타협과 연합과 지속성이 확보되지 못한 영역의 유산은 정반대였다.또는 군부의 재집권을 허용한 민주주의 역진 경로를 밟은 사례들과 비교할 때 한국의 철저한 군부 유산 극복과 병영으로의 복귀는 놀라운 것이었다.
71%가 낮았고 호남보다는 1.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 대한 비자금 수사 요구의 불수용을 통한 민주선거의 보장 역시 지역과 진영.
다른 한 사람은 자식 둘을 구속하였다.하나회 숙청과 정치군부 처벌을 통한 김대중에 대한 강고한 비토세력 제거.